2월 2021

작년 11월 무렵, 미루고 미루었던 여행 계획을 세우고 결심이 흐려질까 일찌감치 비행기표까지 예약했다. 파리와 로마에만 머무는 20일간의 휴가. 5개월 후면 쌓인 일을 저 멀리 밀어놓고 파리의 한 가운데를 거닐고 있으리라. 그렇게 기다리던 봄이 왔건만, 그 봄 뒤에 코로나가 서 있을 줄은 몰랐다.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전개였다.  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며, […]

여기, 땅속에 푹 파묻힌 미술관이 있다. 일본 나오시마 섬에 자리 잡은 ‘지추(地中) 미술관’은 이름 그대로 매표소를 제외한 모든 공간을 땅 아래 둔다. 지하지만 건축가의 영리한 설계 덕분에 내부에는 자연광이 금세 차오르고, 다양한 기하학적 모양의 공간들이 미술관의 동선을 흥미롭게 만든다. 지추미술관을 설계한 이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타오. 그리고 3년에 한 번씩 이곳을 중심으로 흥미로운 […]

오늘 하루 동안 내 손을 거쳐 간 물건들을 떠올려보자. 아침에 골라 입은 옷부터 노트, 만년필, 물컵, 지갑, 책상, 피곤한 몸을 누인 침대까지. 그렇다면 이 물건들의 ‘정서적’ 평균 수명은 어떻게 될까. 내 삶 안에서 가장 오래 동행했던 물건은 과연 몇 살일까.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 피터 옵스빅(Peter Opsvik)은 태어날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사용할 수 있는 […]

모두들 ‘잡지의 시대는 끝났다’고 말한다. SNS, 유튜브, 넷플릭스를 보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누가 잡지를 읽겠냐고. 하지만 종이 잡지를 읽는 시간, 풍요로우면서도 호젓하며, 생의 감각이 사방으로 확장되는 그 시간에는 분명 인터넷에서는 만져지지 않는 또 다른 결이 있다.   종이 잡지에 담긴 글과 사진은 한 주, 한 달, 길게는 한 계절, 한 해에 걸친 생명력을 지닌다. 그 때문일까? […]

– 글 김선미 / 사진 양경필 책을 읽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. 구체적인 병명이 있는 건 아니다. 자간과 행간 사이에 자꾸만 다른 생각이 침범할 뿐. 함량이 낮은 책을 잘못 골랐네, 애꿎은 저자를 탓해보지만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. 내 화려했던 독서 편력은 어쩌다 이렇게 갈 곳을 잃은 걸까. 책을 읽을 때 오는 안온함. 새로운 […]

– 글 김선미 / 사진 PHC 자주 가는 초밥집은 그날따라 대기 줄이 길었다. 길가에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왠지 지루해져 풍경을 살폈다. 행인들의 표정은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무표정할까. 저 가게는 벌써 주인이 세 번째 바뀌었구나, 그렇게 일상의 장면들이 낯설어질 무렵, 공중에 걸려 있는 글귀 하나에 시선이 멈췄다. ’Poetic Humans Club’. 맙소사, 시적인 인간들의 클럽이라니. ‘시’에 […]

– 글 김선미 / 사진 양경필 온라인 쇼핑은 즐거웠으나, 비닐 테이프와 스티커를 일일이 제거해 택배 상자를 분리 배출하는 건 괴로웠다. 비닐봉지를 해파리로 착각해 바다거북이 기꺼이 삼켜버린다는 뉴스에는 문제의식을 느꼈지만, 그 비닐이 우리 집 냉장고 안 브로콜리를 싸고 있는 그것과 같다고는 여기지 않았다. 이 삶의 모순을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2018년 봄. 아파트 단지 내에 수북이 […]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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