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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시, 종이 잡지의 시간


모두들 ‘잡지의 시대는 끝났다’고 말한다. SNS, 유튜브, 넷플릭스를 보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누가 잡지를 읽겠냐고. 하지만 종이 잡지를 읽는 시간, 풍요로우면서도 호젓하며, 생의 감각이 사방으로 확장되는 그 시간에는 분명 인터넷에서는 만져지지 않는 또 다른 결이 있다.

종이 잡지에 담긴 글과 사진은 한 주, 한 달, 길게는 한 계절, 한 해에 걸친 생명력을 지닌다. 그 때문일까? 잡지 안 콘텐츠에는 깊은 호흡으로 관점을 만들어가는 에디터, 디자이너, 포토그래퍼의 시각과 해석이 오롯이 담긴다. 그 정제된 콘텐츠들은 또다시 누군가의 심상을 자극하며 영감의 대상, 새로운 화두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.


대만의 첫 회원제 잡지 라이브러리 ‘Boven Magazine Library(Boven 雜誌圖書館)’는 이러한 ‘종이 잡지 읽는 시간’을 공간 위에 펼쳐놓은 곳이다. ‘공유야말로 멋진 가치관’이라는 슬로건 아래  유럽, 미국 및 아시아 등의 300여 종, 약 2만 권의 잡지를 모았다. 일간 회원, 연간 회원 등 회원제 방식을 도입했는데 회원이 아니어도 일일 NT $ 300(한화 약 11,300원)이면 자유롭게 잡지 열람이 가능하다. 슬리퍼로 갈아 신은 뒤 읽고 싶은 잡지를 골라 들고는 푹신한 소파 위에 몸을 밀어 넣으면 준비 끝. 주인장에게 관심사를 이야기하면 취향에 딱 맞는 잡지 목록을 큐레이션해주는 것도 포인트다. 동시 입장 인원수를 20명 이하로 제한하거나, 가구 디자이너들과 콜라보레이션한 독서의자 등 기분 좋은 독서를 위한 배려 역시 돋보인다.   

Boven은 단순한 잡지 라이브러리가 아닌, 종이 잡지와 그 안에 담긴 콘텐츠를 믿고 지지하는 일종의 태도다. 흥미롭게도 이러한 태도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며 다양한 형태로 전이된다.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 자리 잡은 ‘종이잡지클럽’은 Boven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국내 최초 회원제 잡지 클럽이다. 이곳을 방문하는 고객들의 평균 체류 시간은 4~5시간. 온전히 잡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와이파이까지 제한한 이곳에서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서는 얻지 못하는 사유와 통찰을 경험한다. 잡지의 시대가 과연 끝난 걸까? 2019년 8월, 아늑한 소파에 몸을 기대고 다시 잡지를 편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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글. 김선미

서울 연남동에서 기획 및 디자인 창작집단
포니테일 크리에이티브를 운영하고 있다.
단행본 ‘친절한 뉴욕’, ‘친절한 북유럽’, ‘취향-디자이너의 물건들’,
‘베이징 도큐멘트’를 썼으며 한겨레 신문, 월간 샘터 등에서
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.
현재는 1930년대 한국 근대 잡지에 관한 단행본을 집필 중이다. 

사진. <www.facebook.com/boven437>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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