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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술로 출렁이는 12개의 섬

여기, 땅속에 푹 파묻힌 미술관이 있다. 일본 나오시마 섬에 자리 잡은 ‘지추(地中) 미술관’은 이름 그대로 매표소를 제외한 모든 공간을 땅 아래 둔다. 지하지만 건축가의 영리한 설계 덕분에 내부에는 자연광이 금세 차오르고, 다양한 기하학적 모양의 공간들이 미술관의 동선을 흥미롭게 만든다. 지추미술관을 설계한 이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타오. 그리고 3년에 한 번씩 이곳을 중심으로 흥미로운 예술제 ‘세토우치 트리엔날레(Setouchi Triennale)’가 열린다.

가가와현 동쪽에 있는 나오시마 섬은 1980년대 구리 제련소가 문을 닫으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. 중금속 폐기물로 죽어가던 이 황무지가 다시 회생의 빛을 보인 건 1980년대 말. 일본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이 선친의 뜻을 이어 나오시마를 세계적인 예술섬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면서부터다. 그리고 그 꿈을 이뤄줄 조력자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손을 내민다.  

그렇게 베네세 미술관이, 지추 미술관이, 이우환 미술관이 몇 십년에 걸쳐 차례로 완공되었다. 자연을 침해하는 대신 그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들처럼 이곳에 초청된 예술가들 역시 지역과 괴리된 작품을 ‘진열’하는 대신 주민들 안에서 예술을 발견하고 함께 만들어 나가며 자신의 작품을 완성했다. 그렇게 일상에 예술을 들이게 된 3000명 남짓한 이 섬의 주민들은 예술제가 열리는 시즌마다 도슨트를 자처하며 새로운 활력과 생기를 얻었다. 무겁고 난해한 미술 담론이나 지역 재생의 표본이라는 요란한 공치사도 이곳엔 없다. 오롯이 자연과, 그것에 푹 스며든 예술,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담백하게 향유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.       


2019년, 올해는 3년만에 다시 예술제가 열리는 해다. 전 세계에서 초청된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평온한 섬에 들어차고 여행자들은 섬과 섬을 배로 옮겨다니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며 그 사이를 탐험할 것이다. 예술로 출렁이는 12개의 섬. 그 물결에 몸을 실으면 일상은 어느새 예술이 된다.

이미지 크레딧>

http://benesse-artsite.jp(지추미술관)

https://setouchi-artfest.jp/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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