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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와 함께 자라는 의자

오늘 하루 동안 내 손을 거쳐 간 물건들을 떠올려보자. 아침에 골라 입은 옷부터 노트, 만년필, 물컵, 지갑, 책상, 피곤한 몸을 누인 침대까지. 그렇다면 이 물건들의 ‘정서적’ 평균 수명은 어떻게 될까. 내 삶 안에서 가장 오래 동행했던 물건은 과연 몇 살일까.

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 피터 옵스빅(Peter Opsvik)은 태어날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사용할 수 있는 의자 트립 트랩(Tripp Trapp)을 세상에 내놓았다. 평소 ‘인간을 자유롭게 해줄 가구’를 지향했던 그는 아이의 성장단계에 따라 14단계로 조절이 가능한,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이 의자에 적용했다. 노인이 되어서도 사용할 수 있어 평생 의자로 불리는 물건이다.

트립 트랩의 시작점은 피터 옵스빅의 두 살짜리 아들에서부터였다. 어른용 식탁 의자에 앉아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불편해하는 것을 보고 문제 의식을 느낀 것. 다리를 대롱거리며 허공에 팔을 허우적대는 아이는 혼자 식사를 할 수도 부모와 눈을 마주칠 수도 없었다. 아이에게 최적화된 의자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가구의 기능만이 아닌, 아이가 어른과 동등하게 식사하며 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었다. 여기에 해마다 달라지는 아이의 성장단계를 모두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더해졌다. 자원의 낭비 없이 인간에게 이로운 문제 해결이 곧 좋은 디자인이라 여겼던, 피터 옵스빅다운 발상이다. 좌판의 높이와 발판의 위치를 조절해 총 14단계로 변화하는 트립 트랩은 일상의 문제를 제한된 자원 하에 간결하게 풀어내는 북유럽 디자이너 특유의 방법론이 적용된 예다. 그렇게 탄생한 이 의자는 4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의 인생 의자가 되어주고 있다.


습관적으로 소비하고 죄책감 없이 버리는 데 익숙한 요즘 같은 시대에, 1살 때 쓰던 의자를 평생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. 기억과 경험이 고스란히 누적된 내 삶과 동행하는 물건을 둔다는 것, 오랜 시간을 관통해도 왜곡되지 않는 견고하고, 튼튼한 물건을 만든다는 것은.

오랫동안 내 일생에 둘 물건을 대하는 태도는 즉흥적으로 소비하고 버리는 물건에 대한 태도와 엄연히 결이 다를 것이다. 이러한 지속가능한 가치는 물건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, 더 나아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. 삶 전반을 고려한 디자인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향상시켜왔다. 전 생애에 걸쳐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저 의자처럼. 


<이미지 크레딧>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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